우리나라 줄타기는 대령광대(待令廣大)계열의 나례도감에 소속된 줄광대가 유한계층을 대상으로 연행하는 재인청 '광대줄타기'와 유랑예인(流浪藝人)계열의 서민 계층을 대상으로 순연하는 남사당 여섯마당 중 하나인 '얼음줄타기'가 있다. 줄타기 공연형식은 놀이마당 양편에 말뚝을 각각 두 개씩 박고, 작수목을 세우고 줄을 걸쳐 맨 다음 줄 가운데에 고사상을 차린다. 삼현육각(장구, 북, 당피리, 향피리, 대금, 해금)은 줄 밑에 자리를 깔고 앉아서 연주를 하고 줄광대와 어릿광대는 줄에 오르기 전에 줄고사를 지내고 음악에 맞추어 줄 위에 오른다.
줄광대가 작수목에 오르면 쉬 - 하고 연주를 그치게 하고 갖가지 재담을 하고 어릿광대는 추임새도 하고 재담을 받기도 한다. 줄광대는 재담을 섞어가며 중타령, 새타령, 팔선녀타령, 왈자타령 등 갖가지 줄소리를 하고 이야기를 전개하며, 여러 가지 잔노릇(기예) 40여 가지를 구사한다.
잔노릇이 끝나면 살판을 벌인다. 살판은 줄 위에 일어서서 뒤로 뛰어올라 몸을 날려 공중회전을 한바퀴 한 다음 줄 위에 앉는 동작으로 매우 위험하여 기량이 뛰어나지 못하면 감히 엄두도 못내는 곡예이다. 그래서 살판을 벌이게 되면 먼저 '잘하면 살판이요, 잘못하면 죽을판'이라는 재담을 한바탕 늘어놓고 시작하는 것이다. 살판이 끝나면 줄타기가 끝나게 된다.


줄타기는 1976년에 중요 무형문화재 제58호로 지정되었고 문헌에는 승도(繩度), 주색(走索), 색상재(索上才), 답색희(沓索戱), 고무항( 舞恒), 희승(戱繩), 항희(恒戱)등으로 나온다.

줄타기가 언제부터 연행되었는지 정확한 시대는 알 수 없으나 고구려(高句麗) 고분벽화(古墳壁畵)에 창우(倡優)들의 가무백희(歌舞百戱)가 보이고 신라(新羅)의 팔관회(八關會)에도 창우들의 가무백희가 있었으니 지금으로부터 1300여 년 전 그 속에 줄타기가 있었던 것으로 짐작한다. 팔관회의 전통을 잇는 조선시대(朝鮮時代) 나례(儺禮)에 줄타기가 있었다는 것은 조선 성종때의 학자 성현(成俔)이 지은 구나시(驅儺詩)에 走索還同飛燕輕(날아가는 제비와 같이 가볍게 줄 위에서 돌아간다)이라는 시귀에서 알 수 있다.
그 당시 줄타기는 팔관회나 구나와 같은 궁중축제에서 공연되었고 관아(官衙)나 사가(私家)의 연향(宴享)에서도 공연되었으며 민간의 대동 제(大同際), 단오놀음, 파일(八日)놀음 같은 마을의 큰 축제에서도 창우의 가무백희와 함께 공연되었는데 이 중에서도 줄타기가 인기를 강장 많이 끌었다. 송만재(宋晩載)라는 선비가 창우의 가무백희를 보고 지은 관우희라는 글에 보면 줄타기, 판소리, 죽방울, 땅재주, 판춤 등이 공연되었는데 항상 줄타기가 인기 있어 제일 먼저 노는 것이나 줄타기가 끝나면 구경꾼들이 가기 때문에 근래에는 구경꾼들을 붙잡아두기 위해서 맨 나중에 줄타기를 벌릴 정도로 줄타기가 가장 인기 있는 중요 부문으로 꼽혔다고 한다.

중요무형문화재 제58호 줄타기는 현재 줄광대 김대균(金大均:1967~) 예능보유자가 스승인 김영철(故 金永哲:1920~1988)선생과 이 시대의 마지막 재인청 창우이셨던 이동안 (故 李東安:1906~1995)선생에게 판줄의 기예와 재담 줄소리를 전수받아 일본강점기시대에 사라진 판줄의 원형을 복원했다. 또한 무구한 세월 속에 그 가치를 인정받아 2011년에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인정되어 세계문화재로 등록되었다. 수많은 줄타기 명인들은 모두 세월 속에 잠들고 이제 줄광대 김대균 예능보유자가 줄타기 부흥을 위해 혼신에 노력하고 있다.